万历年间的抗倭援朝战争是很提气的一场战争,我想在银幕上看到李如松、李如柏所率明军最后的神勇,想看到丰臣秀吉时代所谓将星如云的小西行长、藤堂高虎、九鬼嘉隆的狼狈溃败,想看到规模使用火炮的明军炮轰拿火枪穿竹甲的日寇……可惜我们的导演编剧忙着穿越和胡编乱造历史剧,逼得我只能拿韩国的片子当历史片来看了。
李舜臣的几场局部战役被韩国无限拔高,甚至阻止了日寇天津登陆的企图,挽救了大明。
这么任意打扮,熟悉历史的也就一笑了之,你怨不得别人,你自己不屑一顾,只能由着别人说呗!
彼时朝鲜的军制、武器基本和大明一致,语言文字也一致,韩国历史题材电影的服化道都比较认真,因此我也是当历史片来看,努力从韩国将领身上寻找中国历史印记,这不得不说是一个悲哀。
又想起国师的《满江红》,你尊重历史,好好拍个岳家军抗金、十二道金牌召回、风波亭,弘扬爱国主义,不好吗?
带着瞻仰世界三大元帅之首李舜臣上将军指挥世界四大海战之一的闲山海战之神迹的心情看了这部影片。
虽然逻辑、史实、主题方面可能连盗版读本儿歌三百首都不如,但是论水战的画面效果及剧情的流畅性还远不是上、下赤壁这两坨翔能碰瓷的。
不提机器人一样的男主肩上镶的那两条金龙有多离谱了(别跟我说是充电口),我就想问就凭女主这点姿色你是怎么设计出让身为敌军主将的大boss对她私定终身、处处留情,就算被物理扎心也要一舔到底的剧情的?
你凭什么?!
得亏是氛围不合适,不然我丝毫不怀疑您借机秀一把朝鲜军团欧巴们的无上魅力,安排他们将倭军女眷乃至猴王亲女个个迷得神魂颠倒、欲仙欲死,以至其前赴后继地穿过倭奴男人们的重重封锁将情报送入男神们的怀中。
This safeguarded Ming to the West and reversed the tide of war.一如既往,脸可真大啊!
听说花了不少预算,看来相当一部分花在了游戏美工上吗?
类似无人机航拍海上百艘旗舰大战的时候,还蛮壮观的,挺有感觉。
大致做到有点有面。
不过应该历史的考证不多,所以细节就无法太细。
不知道编剧尽力了没有,给男主将们的发挥空间挺小的感觉,常常就是凝重脸,沉静脸,坚毅脸,紧张脸,看起来没啥变化。
当然作为一个剧,还是有不少小段很像舞台剧。
比如那个女侍,咬掉牙毒以后流血昏迷几天,又可以送信又可以那啥了。
期待有史学大牛,借此来科普一番。
百艘战船,在500多年前,总司令怎么给各船长下命令,船长又怎么给每艘船的不同分工下不同的命令,这一个发,那边一个收,都挺有讲究吧。
影片《闲山:龙的出现》故事背景是丰臣秀吉第一次派兵侵略朝鲜,主要表现朝鲜水军将领李舜臣领导的海战。
历史上明朝出兵帮了朝鲜,当时是明朝万历年间,朝鲜国王李昖(朝鲜王朝第14代君主)向明朝求援,明朝当时皇帝明神宗朱翊钧派李如松统领4万兵力抗倭援朝,中朝联手取得胜利,本片中并没有着重表现明军。
影片《鸣梁海战》,故事背景是历史上的露梁海战,日军再次侵略朝鲜,当时朝鲜君主还是李昖。
朝鲜二次求援明朝,明朝调遣7万兵力救援。
朝鲜将领李舜臣牺牲了,明朝将领邓子龙也牺牲了。
如果没有明军援朝,朝鲜基本上就被日本控制了,日本得胜后很可能进攻中国。
战争末尾,丰臣秀吉逝世后,之后德川幕府崛起。
从长远来看,万历朝鲜战争在当时起到了重新整合东亚各国政治军事力量的作用,并影响了几百年。
影片《鸣梁海战》拍的比电影《闲山》早,但在事件时间上两者反过来,《闲山》朴海日演的李舜臣都看得出来比《鸣》崔岷植演的李舜臣更年轻。
影片《南汉山城》里投降大清的仁祖李倧,是《闲山:龙的出现》中李昖的孙子,朝鲜王朝第16代君主,由朴海日饰演。
《南汉山城》的故事背景是1636年,明崇祯九年、朝鲜仁祖十四年,皇太极称帝建立大清国后不久率领十万清军攻打朝鲜,朝鲜打不过大清的铁骑和红夷大炮,被迫投降皇太极,行三跪九叩之礼,把世子当人质。
上面说了万历朝鲜战争中,明朝帮了朝鲜那么多,如果朝鲜投降大清,违背与明朝的同袍之义,况且朝鲜一直是明朝的藩属国,朝鲜人一直认为后金是地方蛮夷之流,称不上正统,所以《南汉山城》呈现出朝鲜人认为投降大清是耻辱。
《夜枭》中的君主仍然是《南汉山城》中的那个投降大清的第16代仁祖李倧,由刘海镇饰。
前面《南汉山城》说世子去大清做人质,《夜枭》里去大清当人质的儿子成年归来,仁祖李倧怀疑世子要夺权,让御医做手脚把世子害死。
《思悼》里饿死世子的英祖李昑,是后面的朝鲜国王,朝鲜王朝第21任君主,由宋康昊饰演。
朝鲜王朝历时518年,共27位君主,在位时间最长的君主就是这位李昑,在位52年(公元1724年到公元1776年),同年代是清朝雍正和乾隆在位时期。
《观相》里首阳大君李瑈,是比较早的,朝鲜王朝第7任君主,由李政宰饰演。
说回《闲山:龙的出现》这个电影,先吐槽一下,接近抗日神剧了,靠人力划桨的船,转舵也太快了吧,而且将军令一出,连旗都不打,几十艘船立马就有反应,这是用无线电还是建了微信群?
决战时候倭寇船一共也没开几炮。
几个小将军大部分时间就是目光坚毅站在船上摆造型。
结果是自己船一艘没沉,对方全军覆没,往自己脸上贴金有点过了。
年代感环境氛围和人物造型还行。
海战场面做得还行,有几个关键节点的关键镜头没有呈现出来。
前面多次看困,主要是能猜到韩国会拍什么内容。
壬辰倭乱及丁酉在乱时期李舜臣有很多以少胜多的海战战果,鸣梁海战就是其中之一,可以说李舜臣确实有一定实力。
陈璘也曾建议李舜臣入仕大明。
“统制使有经天纬地之才、补天浴日之功。
”“呜呼统制!
远藩邦家安危之智,提一旅之残疲,县之黑子。
绝敌西窥,修我内备。
枕戈浴铁,终日或不暇给;缮艘制器,卒岁无少已。
招徕流离者万家,畔贼逃归者千计。
露梁之战,统制前锋,舳舻几陷,我且汝卫。
而既脱于虎口,贼由是失锐,徐且战以且却,遂禽狝而草薙。
余谓统制可免夫斯祸,孰知中流矢而捐逝?
”忆而平居对人,尝曰:“辱国之夫,只欠一死。
”顾今境土既归,大雠已复,缘何犹践夫素厉?
呜呼统制!
该国凋残,谁为与理?
兵戎狼狈,谁为振起?
岂惟失祈父之爪牙,且丧令鲜之百雉。
缅怀及此,讵不流涕?
灵魂不昧,鉴是泥沚。
这是陈璘对李舜臣的评价。
“李舜臣,好汉子也。
收拾战船于散亡之余,能立大功于摧败之后,极可嘉奖。
”这是杨镐(明待将领和大臣)对李舜臣的评价。
还是那句话,输了避而不谈,赢了疯狂渲染……编剧竟能想到让一个倭寇心甘情愿为朝鲜倒戈?
还美其名曰正义感召,看着那个头顶空旷的家伙,我是真的觉得羞愧,这可是历史啊,你要这么玩,就给米国的英雄主义一个熊样……还有那句:“明朝免于倭寇进犯,局势扭转。
”哈哈,听我说谢谢你,因为有你,温暖了四季……之前偷文化,现在连功劳都偷,也不掂量掂量自己几斤几两,究竟谁帮了谁,心里没点13数吗……李舜臣是一个伟大的将领,可惜了,被后世之人如此描绘……
이때 동래(東萊)가 이미 함락되어 왜적들이 계속 몰아쳐 곧장 진격하니 가는 곳마다 대적할 사람이 없었다. 대가가 이미 서로(西路)로 들어가자 황해도 이남에서 동래까지 오직 패전 소식만 들려오고 전혀 다른 소식은 없었다.그런데 경상 우수사(慶尙右水使) 원균(元均)은 전라 좌수사(全羅左水使) 이순신(李舜臣)과 약속하여 한산도(閑山島)에서 회합하였다. 이때에 이순신이 전선(戰船) 80척을 거느리고서 마침내 이해 5월 6일에 옥포(玉浦) 앞바다로 나아가니, 적선(賊船) 30여 척이 사면에 휘장을 두르고 길다란 장대를 세워 홍기(紅旗)·백기(白旗)들을 현란하게 달았으며, 나머지 왜적들은 육지로 올라가 마을 집들을 불사르고 겁탈하였다. 왜적들은 수군(水軍)을 보고는 노(櫓)를 빨리 저어 진지(陣地)를 나와 아군(我軍)과 바다 가운데서 만났는데 아군이 적선 26척을 불살라 버렸다. 이튿날 다시 대전(大戰)을 전개하기로 약속하였는데, 대가(大駕)가 서쪽으로 행행하였다는 소식을 듣고는 여러 장수들이 도착하지 않아, 그대로 서로 모여 통곡하고는 마침내 9일에 제각기 본진(本鎭)으로 돌아갔다.29일에 순신과 원균이 재차 노량(露梁)에서 회합하여 적선 1척을 만나 불살라버렸는데, 조금 후에 보니 바닷가 한 산에 왜적 1백여 명이 장사진(長蛇陣)을 치고 있고 그 아래로는 전선 12척이 벼랑을 따라 죽 정박하고 있었다. 때마침 일찍 들어온 조수(潮水)가 벌써 빠져나가 바닷물이 얕아져서 큰 배는 나아갈 수 없었다. 순신이,"우리가 거짓 퇴각하면 왜적들이 반드시 배를 타고 우리를 추격할 것이니 그들을 바다 가운데로 유인하여 큰 군함(軍艦)으로 합동하여 공격하면 승전(勝戰)하지 못할 리가 없다."하고서, 배를 돌렸다. 1리를 가기도 전에 왜적들이 과연 배를 타고서 추격해 왔다. 아군은 거북선으로 돌진하여 먼저 크고 작은 총통(銃筒)들을 쏘아대어 왜적의 배를 모조리 불살라버리니, 나머지 왜적들은 멀리서 바라보고 발을 구르며 울부짖었다. 한창 전투할 적에 철환(鐵丸)이 순신의 왼쪽 어깨를 명중하였다.2일에 당포(唐浦)에 도착하니 적선 20척이 강 연안에 죽 정박하였는데, 그 중에 큰배 한 척은 위에 층루(層樓)를 설치하고 밖에는 붉은 비단 휘장을 드리워놓고서, 적장(賊將)이 금관(金冠)에 비단옷을 입고 손에 금부채를 가지고서 모든 왜적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중위장(中衛將) 권준(權俊)이 배를 돌려서 노를 재촉하여 바로 그 밑으로 돌진하여 그 배를 쳐부수고, 적장을 쳐다보고 활을 쏘니 시위를 놓자마자 적장이 거꾸러졌다. 4일에 당포(唐浦) 앞바다로 나아가자 전라 우수사(全羅右水使) 이억기(李億祺)가 전선 25척을 거느리고 와 회합하니 여러 장수들이 기운이 증가되지 않는 이가 없었다.5일에 외양(外洋)으로 나가다가 적선이 고성(固城) 당항포(唐項浦) 앞바다로 옮겨 정박하였다는 것을 듣고, 순신이 배 3척을 먼저 보내어 형세를 정탐하도록 하였는데, 겨우 바다 어귀를 나가자마자 바로 포(砲)를 쏘아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모든 군사들이 일시에 노를 재촉하여 앞뒤를 고기꿰미처럼 연결하여 나아가 소소강(召所江)에 이르니 적선 26척이 강 연안에 죽 벌여 있었다. 그 중에 큰배 한 척은 위에 3층 판각(板閣)을 설치하고 뒤에는 검은 비단 휘장을 드리우고 앞에는 푸른 일산을 세워 놓았으며, 휘장 안에는 여러 왜적들이 죽 나열하여 시립하고 있었다. 모든 군사들이 처음 한번 교전하고 거짓 패한 척하여 퇴각하니, 층각을 세운 큰배가 돛을 달고 먼저 나왔다. 모든 군사들이 양쪽에서 공격하니 적장이 화살을 맞고 죽었다. 그러자 모든 군사들이 승세를 타 불을 질러 적선 1백여 척을 소각해 버리고 왜적의 머리 2백 10여 급(級)을 베었으며 물에 빠져 죽은 적은 그 수효를 다 기록할 수 없었다. 6일에 잔여 왜적을 외양(外洋)에서 추격하여 또 한 척을 불살라버렸으며, 9일에 모든 군사가 전투를 중지하고 본진으로 돌아왔다.7월 6일에 순신이 억기와 노량에서 회합하였는데, 원균은 파선(破船) 7척을 수리하느라 먼저 와 정박하고 있었다. 적선 70여 척이 영등포(永登浦)에서 견내량(見乃粱)으로 옮겨 정박하였다는 것을 들었다. 8일에 수군이 바다 가운데 이르니, 왜적들이 아군이 강성한 것을 보고 노를 재촉하여 돌아가자 모든 군사가 추격하여 가보니, 적선 70여 척이 내양(內洋)에 벌여 진을 치고 있는데 지세(地勢)가 협착한 데다가 험악한 섬들도 많아 배를 운행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아군이 진격하기도 하고 퇴각하기도 하면서 그들을 유인하니, 왜적들이 과연 총출동하여 추격하기에 한산(閑山) 앞바다로 끌어냈다.아군이 죽 벌여서 학익진(鶴翼陣)을 쳐 기(旗)를 휘두르고 북을 치며 떠들면서 일시에 나란히 진격하여, 크고 작은 총통(銃筒)들을 연속적으로 쏘아대어 먼저 적선 3척을 쳐부수니 왜적들이 사기가 꺾이어 조금 퇴각하니, 여러 장수와 군졸들이 환호성을 지르면서 발을 구르고 뛰었다. 예기(銳氣)를 이용하여 왜적들을 무찌르고 화살과 탄환을 번갈아 발사하여 적선 63척을 불살라버리니, 잔여 왜적 4백여 명은 배를 버리고 육지로 올라가 달아났다.10일에 안골포(安骨浦)에 도착하니 적선 40척이 바다 가운데 벌여 정박하고 있었다. 그 중에 첫째 배는 위에 3층 큰집을 지었고, 둘째 배는 2층집을 지었으며, 그 나머지 모든 배들은 물고기 비늘처럼 차례대로 진을 결성하였는데, 그 지역이 협착하였다. 아군이 두세 차례 유인하였으나 왜적은 두려워하여 감히 나오지 않았다. 우리 군사들이 들락날락하면서 공격하여 적선을 거의 다 불살라버렸다. 이 전투에서 3진(陣)이 머리를 벤 것이 2백 50여 급이고, 물에 빠져 죽은 자는 그 수효를 다 기록할 수 없으며, 잔여 왜적들은 밤을 이용하여 도망하였다.순신 등이 그의 군관(軍官) 이충(李沖)을 보내어 치계하고 수급(首級)을 바치도록 하니, 행조(行朝)에서는 상하가 뛸듯이 기뻐하며 경하(慶賀)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선조실록 선조 25년(1592) 6월 21일 4번째 기사時, 東萊旣陷, 賊長驅直進, 所向無前, 大駕旣入西路, 黃海以南, 至于東萊, 惟聞敗報, 絶無他信。
慶尙右水使元均, 與全羅左水使李舜臣, 約會閑山島。
時舜臣以戰船八十艘, 乃於是年五月初六日, 進至玉浦前洋, 有賊船三十餘艘, 四面圍帳, 竪立長竿, 亂懸紅白旗, 餘賊登陸, 焚怯閭家。
賊見舟師, 促櫓出陣, 與我軍相遇於洋中, 我軍焚賊船二十六艘。
約以明日更擧大戰, 聞大駕西幸, 諸將不到, 仍爲相聚痛哭, 乃於初九日, 各還本鎭。
二十九日, 舜臣、元均再會於露梁, 遇賊一船焚之, 俄見海邊一山, 有賊百餘長蛇而陣, 其下有戰船十二艘, 緣崖列泊。
時早潮已退水淺, 大舟不得進。
舜臣曰: "我佯退, 賊必乘船追我, 引出洋中, 巨艦合擊, 蔑不勝矣。
" 回船未一里, 賊果乘船追之。
我軍令龜船突進, 先放大小銃筒, 盡燒其船, 餘賊遠望頓足叫呼。
方戰鐵丸中舜臣左肩。
初二日到唐浦, 賊船二十艘, 列泊江岸, 中有一大船, 上設層樓, 外垂紅羅帳, 賊酋着金冠錦衣, 手執金扇, 指揮諸賊。
中衛將權俊, 回船促櫓, 直衝其下, 撞破其船, 仰射賊酋, 應弦而倒。
初四日進至唐浦前洋, 全羅右水使李億祺, 領戰船二十五艘來會, 諸將無不增氣。
初五日出外洋, 聞賊船移泊於固城 唐項浦中洋, 舜臣先遣三船, 往探形勢, 纔出海口, 卽放砲告變。
諸軍一時促櫓, 首尾連亘, 魚貫而進, 至召所江, 賊船二十六艘, 擺列江岸, 中有一大船, 上設三層板閣, 後垂黑綃帳, 前竪靑蓋, 帳內諸賊, 擺列侍立。
諸軍初一交戰, 佯敗而退, 層閣大船, 懸帆先出。
諸軍挾擊, 賊酋中箭而死。
諸軍乘勝縱火, 焚賊船一百餘艘, 斬賊首二百一十餘級, 溺水死者不記其數。
初六日, 追餘賊於外洋, 又焚一船, 初九日, 諸軍罷兵還鎭。
七月初六日, 舜臣與億祺會于露梁, 元均修緝破船七艘, 先來留泊。
聞賊船七十餘艘, 自永登浦, 移泊於見乃梁。
初八日, 舟師至中洋, 賊見我軍盛, 促櫓而歸, 諸軍追至, 則賊船七十餘艘, 列陣於內洋, 地勢狹窄, 且多險嶼, 難以行船。
我軍進退誘引, 賊果悉衆追之, 引出于閑山前洋。
我軍擺列爲鶴翼陣, 揮旗鼓譟, 一時齊進, 連放大小銃筒, 先破賊船三艘, 賊氣挫少却, 諸將軍吏, (勸)〔歡〕 呼踴躍。
乘銳崩之, 箭丸交發, 焚賊船六十三艘, 餘賊四百餘名, 棄船登陸而走。
初十日, 至安骨浦, 賊船四十艘, 列泊洋中。
其中一船, 上建三層大屋, 二船建二層屋, 其餘諸船, 鱗次結陣, 其地狹窄。
我軍再三誘引, 賊懼不敢出, 我軍出入搏戰, 幾盡燒之。
是役也, 三陣所斬二百五十餘級, 溺水死者, 不記其數, 餘賊乘夜而遁。
舜臣等遣其軍官李冲, 馳啓獻級, 行朝上下, 無不踴躍稱慶。
【冲之來也, 上問以嶺南之事, 對曰, 聞監司金睟在咸陽云, 而聲問不通。
賊由直路而上, 故左右道分爲兩界, 號令不通云。
】朝鲜王朝实录 宣祖实录 宣祖25年 6月21日 第四纪事비변사가 아뢰기를,"경상 수사(慶尙水使) 원균(元均)의 승첩을 알리는 계본(啓本)은 바로 얼마 전 이순신(李舜臣)이 한산도(閑山島) 등에서 승리한 것과 한때의 일입니다. 싸움에 임해서는 수종(首從)이 있고 공에는 대소가 있는 것이어서 그 사이에 차등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확실히 알기가 어려운 일입니다. 적을 벤 것으로써 대략을 논하면, 힘을 다하여 혈전했음에는 의심이 없습니다. 다시 1등에 참여된 이는 마땅히 별도로 포상을 하여야 할 듯합니다. 첨사(僉使) 김승룡(金勝龍), 현령(縣令) 기효근(奇孝謹)은 특별히 당상(堂上)에 올리고, 현감(縣監) 김준계(金遵階)는 3품으로 승서(陞敍)하고, 주부(主簿) 원전(元㙉)은 5품으로 승서하고, 우치적(禹致績) 등 4인은 6품으로 승서하고, 이효가(李孝可) 등 13인은 공에 맞는 관직을 제수하소서. 만호(萬戶) 한백록(韓百祿)은 전후 공이 가장 많은데 탄환을 맞은 뒤에도 나아가 싸우다가 싸움이 끝나고 오래지 아니하여 끝내 죽음에 이르렀습니다. 극히 슬프고 애처로운 일이니, 또한 당상(堂上)으로 추증하소서. 배지인(陪持人) 박치공(朴致恭)은 3급(級)을 베고 왜적 한 명을 사로잡았으니 6품으로 승서함이 어떠하겠습니까?"하니, 답하기를,"이에 의하여 조처해야 한다. 원균에게는 가자(加資)를 하지 않는가?"하였는데, 회계(回啓)하기를,"원균은 이미 높은 가자를 받았고 지금 이 전첩(戰捷)의 공은 이순신이 으뜸이므로 원균에게는 가자할 필요가 없을 듯합니다."하였다.선조실록 선조 25년(1592) 8월 24일 2번째 기사備邊司啓曰: "慶尙道 元均獻捷啓本, 卽頃日李舜臣 閑山等島一時事也。
臨戰首從, 功之大小, 必有差等於其間。
而在此的知爲難。
以斬敵論大槪, 戮力血戰則無疑。
再參一等, 似當別爲褒賞。
僉使金勝龍、縣令奇孝謹特陞堂上, 縣監金遵階三品陞敍, 主簿元㙉五品陞敍, 禹致績等四人六品陞敍, 李孝可等十三人相當職除授。
萬戶韓百祿前後之功最多, 而至於中九之後進戰, 戰罷不久, 竟至於死。
極爲慘惻, 亦堂上追賜。
陪持人朴致恭斬三級、生擒一倭, 六品陞敍何如?" 答曰: "當依此爲之矣。
元均則不爲加資乎?" 回啓曰: "元均已受重加, 且今玆戰捷之功, 李舜臣爲主, 元均似不必加資矣。
"朝鲜王朝实录 宣祖实录 宣祖25年 8月21日 第二纪事这才是当时历史的真实记录。
日本国和韩国很大,都是宇宙国!
日本国和韩国很大,都是宇宙国!
对对对,导演说的对,日本国和韩国都很大,都是超级大国!
壬辰倭乱的时候是大国,现在更是不得了!
辽东半岛和山东被半岛估计是被导演吃了!
导演千万别说图里两个“小撅撅”是辽东半岛和山东半岛,这么一点点可赶不上导演的脑仁大!
对对对,导演说的对,日本国和韩国都很大,都是超级大国!
壬辰倭乱的时候是大国,现在更是不得了!
辽东半岛和山东被半岛估计是被导演吃了!
导演千万别说图里两个“小撅撅”是辽东半岛和山东半岛,这么一点点可赶不上导演的脑仁大!
对对对,导演说的对,日本国和韩国都很大,都是超级大国!
壬辰倭乱的时候是大国,现在更是不得了!
辽东半岛和山东被半岛估计是被导演吃了!
导演千万别说图里两个“小撅撅”是辽东半岛和山东半岛,这么一点点可赶不上导演的脑仁大!
今天聊聊韩国电影《闲山:龙的出现》。
片名한산: 용의 출현/ 한산도대첩 / Hansan: Rising Dragon (2022),别名闲山岛海战。
韩国人拍了一部史诗性质的历史战争电影《闲山:龙的出现》,浓墨重彩展现了1592年朝鲜水军在闲山岛近海击败日本水军的“闲山岛海战”。
本片和《鸣梁海战》(명량 ,2014)一样,讲述的依旧是朝鲜水军大将李舜臣的故事。
如果影片只是表现这一场海战的话,那就还算不错。
但有意思的是,影片中不忘提及战争背景、夸大海战影响,其历史虚无主义就让人不得不吐槽几句了。
2013年《鸣梁海战》的大获成功点燃了韩国民众的爱国激情,成为韩国有史以来观影人数最多、票房最高的电影,续集也顺理成章地被提上日程。
制作方决定延续《鸣梁海战》的成功,再拍摄两部有关李舜臣的海战电影,8年后《闲山:龙的出现》成功上映,同样取得了肉眼可见的成功。
影片上映5天后就成为当年票房第三名。
《闲山:龙的出现》的故事发生在1592年,也就是《鸣梁海战》发生的前五年。
影片中日寇入侵朝鲜,把朝鲜军队打得节节败退,眼看着就要打下朝鲜王京汉城了,连朝鲜国王都跑路想向明朝求援。
此时所有的重担都落在朝鲜全罗道左水使李舜臣身上。
他要在海山阻击日寇水军,这样才能阻止日寇的灭国计划,以及随后的占领大明和天竺。
值得肯定的地方是,《闲山:龙的出现》在服道化上下了狠功夫,不管古代人穿的是什么样的,至少影片中呈现的状态能够让人相信这是一场气势恢宏的大决战。
灯光效果、视觉特效,都能看出经费在燃烧。
最后一场大战中,大量船只开始由远及近的史诗级战斗,士兵们也舍生忘死一般地扭打成一团,从娱乐性上来说是合格的。
在剧情设置方面,影片涉及爱情元素,但只是一笔带过,知道取舍,没有浪费任何笔墨,详略得当。
《闲山:龙的出现》的故事背景是发生在1592年至1598年的万历朝鲜战争。
万历朝鲜战争的起因是日本的野心。
1950年,猴子丰臣秀吉继承先主织田信长的遗志,结束了长达一百多年的战国时代,完成日本统一。
紧接着丰臣秀吉为了化解国内大名对土地分封的不满,同时实现个人野心,决定入侵朝鲜,然后再征服中国、进夺天竺,从而称霸亚洲。
战争开打1个月,日军就攻陷了朝鲜王京汉城,朝鲜国王李昖北逃义州,向宗主国明朝求援。
明朝派李如松统领4万大军抗倭援朝,李舜臣在海上也取得多次海战胜利。
直至1595年,万历朝鲜战争第一阶段结束。
1597年,日本以14万大军再次入侵朝鲜,朝鲜二次求援,明朝调7万兵力赴朝救援。
中朝联军在陈璘、邓子龙、李舜臣的指挥下,取得了鸣梁海战的胜利,但李舜臣和邓子龙壮烈牺牲。
这也是电影《鸣梁海战》的内容。
最终万历朝鲜战争以中朝联军的胜利告终。
万历朝鲜战争深刻影响了东亚政治军事格局。
朝鲜从亡国到复国,而日本则元气大伤,丰臣秀吉集团势力被大幅削弱,德川幕府崛起,这些都是后话。
《闲山:龙的出现》描写的只是万历朝鲜战争第一阶段的其中一次战斗。
战斗的过程基本也和电影中所描写的一样,1592年7月6日,李舜臣进兵出唐浦附近水域,并于7月7日清晨,将集结于巨济岛的日本水师引至闲山岛附近水域决战。
此处具有较为宽阔的深水环境,可以方便大军设置埋伏合围歼灭日军。
大决战中,朝鲜水军将日军包围,随后朝鲜水军直接冲撞日本水军,很快撞翻了日军前方的几艘大船,而其余朝鲜战船也奋勇杀敌,击沉日军40艘船,创下“闲山岛大捷”。
影片至此就结束了,但如果就此打住那也还好,可偏偏电影还要无限拔高这场海战的意义。
按照影片的说法,朝鲜水军的闲山岛大捷不仅打败了日寇,还拯救了大明王朝,绝口不提自己一个月被人攻占王京,跑到大明求援;也不说明朝军队援朝后,朝鲜人争夺指挥权;更不说此战之后,李舜臣的战术被日军掌握克制方法,日军以固守据点的方式对付朝鲜水军,李舜臣再无法取胜,釜山浦、长门浦、熊川、唐项浦、永登浦等后续海战全部失败……
《闲山:龙的出现》的副标题是龙的出现,但全片你都看不到龙在哪里,只有几只老乌龟一样的龟船在横冲直撞。
李舜臣克敌制胜的奇招就是全身披甲的龟船。
龟船吃水大、护甲高,依靠冲撞可以把敌船撞个大洞。
大家可以把龟船想成DOTA里的钢背兽,防御值极高。
《闲山:龙的出现》唯一说对的就是战争性质。
这是一场义战与不义之战。
猴子为了转移国内矛盾,悍然发动侵略战争,直接把东亚国家拉进泥潭。
三四百年后,日本人故伎重施,再次把东亚搅得鸡犬不宁。
我稍微看了一下西方国家网友的评论,他们说这部作品比起吴宇森的《赤壁》,更像是《300勇士:帝国崛起》,表示影片依靠CGI辅助提供了非常棒的体验,尤其是迷雾散去战舰现身的一刻,颇能打动人。
别看《闲山:龙的出现》讲述的只是漫长战争中的一个小到不能再小的战斗,导演却将故事表现得宛若一场世纪大战。
影片内容宏大且密集,从朝鲜、日本两个方面分别叙事,场景包含水路两条线,时间线跨越战争前后数日,给人的感觉就是这场战斗将决定万历朝鲜战争的最终走向。
但闲山岛大捷可不是赤壁之战那样的决定性战斗,可影片呈现出的效果就是很能唬人。
韩国总觉得自己是朝鲜半岛的正统继承人。
《鸣梁海战》《闲山:龙的出现》等一系列提振韩国人民族自豪感的电影颇为吃香。
但我们也不知道一个没有主权的国家怎么会产生这种错觉的?
韩日近几十年成为殖民地后,才变得安分守己,可不是这俩货本身是什么好鸟。
这可能和缺啥就要显摆啥一样,韩国男人对某种手势特别敏感,韩国的爱国热情也只能在历史虚无主义中自我高潮。
我们如果不拍摄属于自己的历史题材电影,恐怕以后连历史都要被偷国改写。
大逃跑可以拍成《敦刻尔克》,长津湖可以拍成《忠诚》,我们正面描写历史反而会被人指责战狼。
朝鲜神将拯救大明王朝,虚无主义殖人自我感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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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分。
金汉珉编剧导演、朴海日主演作品。
可圈可点。
毕竟我大明王朝,郑和也下过西洋,但华语导演无一人可以拍出一场像模像样的海战。
倭国将领胁坂安治率舰队进入朝鲜,目标直指大明王朝的天津城,朝鲜皇帝吓得仓皇逃窜。
李水师李舜臣坚壁清野,誓死和胁坂一战。
双方终极之战不约而同选择在见梁海峡。
胁坂安治的策略是诱敌深入,围而歼之;李水使的策略是引蛇出洞,布好战阵,一网打尽。
胁坂安治的舰队数量惊人,战斗力爆表,而李水使有令海上不寒而栗的龟甲舰。
最终李水使凭借着惊人的冷静,耐心的等待,将胁坂安治的舰队引入阵中,尽数歼灭。
场面十分火爆,值回票价。
弱在细节的表现,比如海浪、天气、风速与人物的服饰甚至胡须的关系,比如船体破裂爆炸的细节等等都经不起推敲。
而大场景震撼之余,片中的文戏明显偏弱,战争不仅考验将领的谋略与勇敢,更要反思战争的残酷与失去的人性。
这恰好是许多战争片所缺失的。
不拍的话,韩国人就没什么可吹的了。
制作精良,最后的高潮有大片的感觉
真的很好一部战争片,被低估了
场面挺大,看着挺过瘾
没有第一部那么精彩,但是比第一部更真实。
韩国拍的抗日爽剧,在电影院看起来尤其爽啊!此外感受: 海战好特别;李舜臣全程面瘫,被打造成朝鲜诸葛亮。台译《韩山岛海战》。
当做一部让历史事件更有画面感的电影来看。壬辰倭乱,明军入朝支援前,1592年7月8日李舜臣带领朝鲜水师取得的一次重要胜利,闲山岛大捷。
能把真实的海战拍成如此的浮夸,脸皮厚的出奇。编剧和那降了的倭寇一样,厚着脸皮自我感动。
第一部我是为了看崔岷植,第二部没有崔岷植我还有什么看头?过于拖沓时长太久观感不佳
三颗星给难得见的海战,其它浮夸,不好看。字幕英文转译的?质量不行,太阁殿下都能翻成大名
不带点儿国恨家仇是没法get这部电影。。。反正我是没觉得这兵法有多厉害。大场面战争片中国拍的多了,这部还不如很多中国电影。。。
虽然2个多小时,但是一点也不拖沓,海战场面太好看了!!!“这是一场正义的战场,所有人抱着同一个信念而战。”;论别人的电影日语不用配音这件事。
挺好看的啊小人物的信念精神挺好的,战斗场面也很赞啊。不过,一场小海战就阻止日本狗侵犯我大明?棒子真是!
韩国人现在商业片排得真可以,剧情能抓住人,场面也够大。
看看战术还行,此役的战果被朝鲜人无限放大,但其实日本水师依然掌握着制海权。朝鲜国王后来命令李舜臣主动攻击日军补给线,但被李舜臣拒绝。这在日后也成为了李舜臣被撤职的一个主因。
结尾的海战,还是颇有意思的!明朝为朝鲜抗倭,做了很多事……
这样拍下去,甲午海战也能拍成是抄袭韩国了吧,而且还没打赢!
我居然一直以为海报上是薛景求…
比上一部强
😋